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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후기 그해 봄, 검사들은 죽음마저 조작했다
2019-12-28 16:5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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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분신 정국 때 서슬 푸른 검찰은 명확한 증거도 없이 강기훈씨를 유서 대필자로 몰았다. 훗날 법원이 최종적으로 강씨의 무죄를 선언한 뒤에도 그에게 사과하거나 용서를 구한 검사는 아무도 없었다.
얼마 전 가톨릭 사제 한 분이 돌아가셨어. 서강대학교 총장을 역임한 박홍 신부라는 분이지. 1970~80년대 이른바 ‘운동권 사제’로 꽤 이름을 날렸는데, 1990년대에는 ‘레드 바이러스’, 즉 빨갱이를 박멸해야 한다는 선동을 서슴지 않는 극우 인사로 돌변해. 이런 유턴의 이유에 대해 어떤 이들은 이렇게 분석하기도 한다. 박홍 신부는 이른바 ‘일반 민주주의자’로서 군부독재를 거부했지만 북한발 주체사상의 경향성을 드러내던 1980년대 중반 이후의 운동권에 경악했다는 것이지.

아빠는 박홍 신부가 진정한 민주주의자였다면 주체사상을 격하게 비판할지언정 그들을 ‘박멸’하자고 주장해서는 안 되며, 공론장에서 그들과 당당히 싸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유감스럽게도 박홍 신부는 그렇지 못했어. ‘운동권 사제’ 박홍은 1991년 5월 그 이전과는 사뭇 다른 포스를 발휘하며 신문 지면을 장식하게 돼.

1991년 4월 명지대학교 신입생 강경대가 시위 도중 경찰에 잡혀 쇠파이프로 맞아 죽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온 나라가 발칵 뒤집혔어. 이때 분을 참지 못한 학생들이 제 몸을 불살라 투쟁을 호소하면서 이른바 ‘분신 정국’이 이어졌어. 그해 5월8일 서강대학교 본관 옥상에서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씨가 분신 후 투신자살했다.

이 안타까운 죽음 직후 박홍 신부(당시 서강대 총장)는 기자들을 만나 이런 얘기를 하지. “현장을 직접 돌아본 결과 반생명적 죽음과 어둠의 세력이 정의에 목마른 젊은이들을 유혹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 이 죽음을 선동, 이용하는 세력의 정체를 폭로하는 선포식을 올리고 싶다.”

박홍 신부는 그 말을 하면서 성경에 손을 얹고 있었다고 해. 나름 진정성을 표하고 싶었겠지만 말 자체가 이상하지 않니? 어둠의 세력이 젊은이들을 분신으로 ‘유혹하고 있다’는 말은 자신의 ‘느낌’일 뿐인데 그걸 폭로하는 선포식을 가지고 싶다? 세상에 느낌을 선포하는 사람도 있나? 그건 욕망이지. 자신의 느낌을 사실로 선포하고 싶은.

그 욕망을 열띠게 받아안은 사람들이 있었어. 대한민국 검찰. 당시 서울지검 강력부 강신욱 검사는 “김씨가 투신하기 직전 서강대 본관 건물 옥상에 다른 사람이 함께 있는 것을 본 목격자가 나타났다 (···) 다른 사람들이 자살을 돕거나 방조한 사실이 있는지 여부를 조사 중(<한겨레신문> 1991년 5월9일)”이라고 했지.

‘목격자’라고 검찰이 지목한 서강대 교수는 김기설씨 투신을 직접 보지 못했고 그 직후 옥상에 뛰어 올라간 학생들을 본 것이라고 토로했지만 이미 검찰에게는 오불관언이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있지만 당시 검찰은 이렇게 말하는 듯했지. “믿는 만큼 보인다.” 머리 좋은 검사들은 자신들이 믿는 바를 사실로 만드는 작업에 착수하게 돼. 사건은 서강대 관할 지청이 아니라 서울지검으로 이송됐고 즉시 강력부 검사 전원이 포함된 대규모 수사팀이 꾸려졌어. 누군가 현장에서 목격된 게 아니라면 또 다른 ‘증거’를 찾아내야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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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설씨 장례식도 치러지기 전 고인의 자취방을 수색했던

검찰은 유서의 ‘필적’에 주목했어. 그들의 믿음에 따르면, 분신하기를 거부하는 김씨를 자살시키기 위해 누군가 유서를 대신 써주고 스스로 몸에 불을 붙이게 만들어야 했으니까. 검찰은 자신의 믿음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온 사방을 들쑤셨어. 5월14일 김씨의 여자친구 집에 들이닥쳐 김기설씨한테 받은 메모지를 압수해간 건 그 시작이었지. 검찰은 유서와 김씨의 필적이 다르다는 이유로 동료였던 강기훈씨를 김기설씨의 유서를 대필한 자살방조범(아니 그쯤 되면 살인이지 왜 자살 방조일까)으로 몰았다.




검찰의 첫 번째 도깨비방망이가 휘둘러진 거지. 사람마다 필체는 다르지만 또 여러 필체를 사용하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야. 김기설씨도 다양한 필체를 지닌 사람이었고 유서 속 필체와 똑같은 메모도 발견됐지만 검찰은 유서와 다른 필체만이 그의 필체라고 우겼단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감정(먼 훗날 완벽하게 번복된)과 주변 인사들의 부정확한 증언(이 또한 후일 그들 스스로 부정하게 된다) 외에 강기훈씨가 유서를 대필했다는 증거는 없었어. 언제 어디서 유서를 대필했고 필적 외의 증거는 무엇이며, 왜 김기설씨는 자신의 죽음 앞에서 유서조차 쓰지 못했을까 하는 질문에 검찰은 한마디도 답하지 못했다.

서슬 푸른 검찰이 정색을 하고 주장하는 데다 사람들의 의심이 곁들여지면서 강기훈씨 유서 대필은 허황된 거짓말에서 ‘그럴지도 모르는’ 사실로 바뀌어갔어. 검찰은 나치의 선전상 괴벨스도 썼던 도깨비방망이를 휘둘렀던 거야. “거짓말도 100번을 하면 진실이 된다.” 이 도깨비방망이는 언론의 뻥튀기로 더욱 파괴적으로 커져갔어. 1991년 5월19일자 <조선일보>에는, 미국 <뉴욕타임스>에 “젊은이들의 자살이 그 어떤 경로를 통해 중앙에서 명령을 받은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고 있으며, 일부 사람들은 이 지령이 실의에 빠지고 고립된 북한으로부터 나오고 있다고 은밀히 암시하고 있다”는 보도가 실렸다는 기사가 났어. 이 ‘소문’을 낸 사람들은 바로 검찰과 <조선일보> 자신들이었지만 그걸 받아쓴 <뉴욕타임스>를 들먹인 순간 강기훈씨 유서 대필은 공신력 있는 사실이 되고 말았지.

대법관, 국회의원으로 승승장구
이에 더해 검찰은 또 다른 도깨비방망이, 멀쩡하고 팔팔한 사람도 한번 조사받고 나오면 한강에 뛰어들게 만든다는 그 두려운 강압수사를 강기훈씨에게도 어김없이 퍼붓는다. 여러 검사가 번갈아 조사하며 녹초를 만드는 것은 물론이고 심야에도 새로운 검사가 나타나 강씨의 피를 말렸지. 잠 안 재우기 담당인 듯했던 검사의 이름은 곽상도. 그는 훗날 이렇게 변명한다. “야간 조사가 허용되던 때였다.” 밤이면 밤마다 “네 친구의 유서를 대신 써줬지?”라고 자백을 강요하던 이 검사는 지난 박근혜 정권에서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냈고 지금도 국회의사당에서 명패 달고 국회의원 노릇을 하고 있단다. 하기야 이 정도가 무엇이 특별하겠니. 유서 대필 사건을 처음으로 맡았던 검사 강신욱은 이후 대한민국 사법부의 최고 명예이자 권위라 할 대법관까지 지낸 뒤 퇴임했다.

친구를 자살하게 하고 유서까지 대신 써주는 사이코패스로 만들었던 검사들이 그렇게 승승장구 욱일승천하는 풍경을 강기훈씨는 두 눈을 뜨고 피를 토하며 지켜봐야 했다. 가슴에 얼마나 울화가 치밀었을까. 강씨는 현재 투병 생활을 힘겹게 이어가고 있단다. “그 사람들은 국민의 공복이 아닙니다. 공명심과 자기 입신, 이걸 위해서 저를 희생양으로 삼은 사람들이에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애들이고요. 무리한 수사가 축이고요. 주로 피의자나 참고인 윽박질러가지고 하는 게 기본 기법이고(<뉴스타파> 2012년 8월31일, 강기훈 인터뷰).”

법원이 최종적으로 강기훈씨의 무죄를 선언한 뒤에도 그에게 사과하거나 용서를 구한 검사는 아무도 없단다. 괴이한 도깨비방망이를 휘두르며 ‘죄 나와라 뚝딱!’을 외쳐대던 검사들, 죄를 만들기 위해 사람의 몸을 골병들게 하고 마음을 찢어발기던 뿔 달린 도깨비들은 여전히 그 뿔을 감투 삼아 쓰다듬으며 거들먹거리며 여전히 잘 먹고 잘살고 있구나. 과연 어느 때가 되어야 저들은 도깨비에서 인간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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